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 1
안녕하세요, IJM에 프리덤 파트너로 함께하고 있는 김한나입니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후 현재 신약개발회사에서 지식재산권(IP)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존엄한 생명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길을 걷고 있는데, 이렇게 IJM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기쁩니다.
제가 섬겼던 교회에서 IJM과 팀룩워십이 함께 ‘보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컨퍼런스에서 처음 IJM을 알게 되었어요. 평소 비전을 놓고 기도하던 말씀(이사야 1:17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이 컨퍼런스 입구에 전시된 것을 보고 유대감이 들었어요. 제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이 단체의 실천적 방향성이 일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IJM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Q. IJM에 후원을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로 믿기 힘든 참혹한 실상을 접하며, 우리 역사 속의 구조적 억압과 인권 유린의 사례들이 투영되었습니다. 개인의 자발적 선택 사라지고, 거대한 외부 권력의 부조리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법적 사각지대’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깊은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평범한 이들이 저항할 수 없는 구조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충격이었어요.
생명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늘 많았지만, 그동안 제가 생각한 정의는 주로 가시적인 실천에 국한되어 있었어요. 법이라는 체계가 생명을 보호하는 즉각적인 도구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의료나 건축 같은 직접적인 구호가 더 직접적이고 효율적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IJM의 활동을 들었을 때 그 인식이 전환되었어요. IJM은 무너진 사법 체계를 재건하고 법을 정의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는 IJM의 활동을 보며, 원치 않는 굴레에 갇힌 이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함께 하고싶다는 마음으로 파트너 합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 2
Q. 그동안 참여하신 IJM의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와 그 시간을 통해서 느낀 점은 무엇이 있나요?
게리 하우겐의 약탈자들을 함께 읽고 나눔을 가졌던 북클럽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빈곤의 배후에 존재하는 폭력의 실상을 함께 마주하며, 단순한 공감을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 다른 경험과 삶의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소명을 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마치 꽃을 피우기 위해 누군가는 밭을 갈고, 누군가는 씨를 뿌리고, 또 누군가는 물을 주는 것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의 목적을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전 북클럽 경험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저는 IJM의 가장 큰 자산이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한 참여자께서 현장 활동가들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에 비유하셨던 말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 표현처럼 IJM은 단순한 구호 활동을 넘어, 억압받는 이들의 자유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공동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고통에 함께하겠습니다. 끝까지 곁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무언의 약속이 현장 활동가들과 후원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는 점이 IJM만의 가장 귀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준 친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IJM 게리 하우겐의 저서인 약탈자들을 선물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답례품보다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은 책을 통해 현대판 노예제와 인권 문제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이후 IJM의 활동과 이슈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IJM의 사역을 알리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어드보커시 활동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후원을 단순히 시혜적인 관점이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나중'이 아닌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고민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 3
Q. 함께 뜻과 마음을 모으고 있는 프리덤 파트너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예비 프리덤 파트너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올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어요. 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분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고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속성을 닮아가는 ‘능동적인 기다림’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가 관념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실천을 통해 실체화될 때 비로소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롭게 쓰러져 있는 이들의 손을 맞잡는 작지만 단단한 연대가, 우리 스스로를 정의의 일부로 만들어줄 거에요. 그 귀한 여정에 더 많은 분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은 정의는 거창한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의 아픔에도 마음을 내어주는 태도. 그런 마음들이 결국 정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와 인터뷰 내내 느껴졌던 것은 ‘진심’이었다. IJM에서 진행한 북클럽에서 함께 약탈자들을 읽으며 나눈 연대의 기억, 그리고 결혼식 답례로 친구들에게 ‘약탈자들’을 선물했던 이야기까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나누고 싶어 했던 마음은, 정의를 결국 삶의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누군가를 거창하게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조용히 살아내고 나누는 태도.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그 담담한 진심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정의는 거대한 구호나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믿는 가치를 꾸준히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 1
안녕하세요, IJM에 프리덤 파트너로 함께하고 있는 김한나입니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후 현재 신약개발회사에서 지식재산권(IP)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존엄한 생명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길을 걷고 있는데, 이렇게 IJM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기쁩니다.
제가 섬겼던 교회에서 IJM과 팀룩워십이 함께 ‘보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컨퍼런스에서 처음 IJM을 알게 되었어요. 평소 비전을 놓고 기도하던 말씀(이사야 1:17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이 컨퍼런스 입구에 전시된 것을 보고 유대감이 들었어요. 제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이 단체의 실천적 방향성이 일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IJM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Q. IJM에 후원을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로 믿기 힘든 참혹한 실상을 접하며, 우리 역사 속의 구조적 억압과 인권 유린의 사례들이 투영되었습니다. 개인의 자발적 선택 사라지고, 거대한 외부 권력의 부조리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법적 사각지대’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깊은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평범한 이들이 저항할 수 없는 구조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충격이었어요.
생명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늘 많았지만, 그동안 제가 생각한 정의는 주로 가시적인 실천에 국한되어 있었어요. 법이라는 체계가 생명을 보호하는 즉각적인 도구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의료나 건축 같은 직접적인 구호가 더 직접적이고 효율적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IJM의 활동을 들었을 때 그 인식이 전환되었어요. IJM은 무너진 사법 체계를 재건하고 법을 정의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는 IJM의 활동을 보며, 원치 않는 굴레에 갇힌 이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함께 하고싶다는 마음으로 파트너 합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 2
Q. 그동안 참여하신 IJM의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와 그 시간을 통해서 느낀 점은 무엇이 있나요?
게리 하우겐의 약탈자들을 함께 읽고 나눔을 가졌던 북클럽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빈곤의 배후에 존재하는 폭력의 실상을 함께 마주하며, 단순한 공감을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 다른 경험과 삶의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소명을 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마치 꽃을 피우기 위해 누군가는 밭을 갈고, 누군가는 씨를 뿌리고, 또 누군가는 물을 주는 것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의 목적을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전 북클럽 경험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저는 IJM의 가장 큰 자산이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한 참여자께서 현장 활동가들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에 비유하셨던 말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 표현처럼 IJM은 단순한 구호 활동을 넘어, 억압받는 이들의 자유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공동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고통에 함께하겠습니다. 끝까지 곁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무언의 약속이 현장 활동가들과 후원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는 점이 IJM만의 가장 귀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준 친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IJM 게리 하우겐의 저서인 약탈자들을 선물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답례품보다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은 책을 통해 현대판 노예제와 인권 문제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이후 IJM의 활동과 이슈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IJM의 사역을 알리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어드보커시 활동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후원을 단순히 시혜적인 관점이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나중'이 아닌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고민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 3
Q. 함께 뜻과 마음을 모으고 있는 프리덤 파트너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예비 프리덤 파트너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올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어요. 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분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고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속성을 닮아가는 ‘능동적인 기다림’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가 관념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실천을 통해 실체화될 때 비로소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롭게 쓰러져 있는 이들의 손을 맞잡는 작지만 단단한 연대가, 우리 스스로를 정의의 일부로 만들어줄 거에요. 그 귀한 여정에 더 많은 분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김한나 프리덤 파트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은 정의는 거창한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의 아픔에도 마음을 내어주는 태도. 그런 마음들이 결국 정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와 인터뷰 내내 느껴졌던 것은 ‘진심’이었다. IJM에서 진행한 북클럽에서 함께 약탈자들을 읽으며 나눈 연대의 기억, 그리고 결혼식 답례로 친구들에게 ‘약탈자들’을 선물했던 이야기까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나누고 싶어 했던 마음은, 정의를 결국 삶의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누군가를 거창하게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조용히 살아내고 나누는 태도.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그 담담한 진심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정의는 거대한 구호나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믿는 가치를 꾸준히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