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살이었던 리(Lee)*의 집에는 언제나 폭풍이 몰아쳤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마약에 중독돼 있었다. 저녁이면 술 냄새와 고함이 집을 채웠고, 새벽이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울음이 들려왔다. 리는 늘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익숙해질 수 없는 폭력이 세상의 질서인 줄 알고 자라야 했다.
그런 리에게는 일하지 않는 부모와 다섯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리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막내의 기저귀를 갈았다. “저는 집안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리는 어린 아이었지만 이미 가족들 안에서 ‘엄마’였다.
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리의 부모님의 싸움 소리는 동네 끝까지 퍼졌고,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그 소리를 흉내 냈다. 아이들은 웃으며 “너희 집 어제 또 싸웠다며?”라고 말했고, 리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 부끄러움은 말보다 깊게 새겨졌다. 폭력은 단지 집 안의 일이 아니었다. 이웃의 시선 속에서도, 놀림 속에서도 리를 따라다녔다. 리의 이름은 어느새 ‘그 집 아이’로 불렸고, 아무도 진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를 따라 같은 동네에 사는 이모의 집에 가게 되었다. 눅눅한 공기와 싸늘한 조명이 깔린 그 방 안에서 리는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엄마는 방 한켠에 앉아 있었고, 이모는 리에게 다양한 포즈들을 지시했다. 거절하는 법을 배우기엔 아직 너무 어렸기에 ‘싫다’는 말을 꺼내면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리는 그저 가족들이 시키는 대로, 어른들이 바라보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 일을 마치면 이모는 50페소(약 1,000원)를 내밀었다. 낡고 구겨진 지폐 한 장, 그 돈이면 작은 인형을 하나 살 수 있었다. 인형의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드레스, 리는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만큼은 자신이 평범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리는 그 지폐를 손에 쥐며 늘 혼잣말을 했다. “이건 나쁜 게 아니야. 인형을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어린 리는 세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마음으로 견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의 엄마는 그들의 집에 컴퓨터 한 대를 가져왔다. 낡은 집 한구석에 처음으로 불빛이 들어왔다. 그날부터 리는 더 이상 이모의 집에 가지 않았다. 카메라가 켜지면, 엄마는 리를 불러. “오늘도 촬영을 해야지. 안 하면 밥 절대 못먹어!” 라고 소리치며 말했다. 리는 배가 너무 고팠고 그 말이 진짜일 거라 믿었다. 울면 혼났고 웃으면 괜찮다고 했다. 울음과 웃음의 경계가 흐려진 채 리의 하루는 반복되었고, 거의 매일 매일이 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리의 기억 속에서 그 방은 늘 어둡게 남아 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커튼은 낮에도 젖혀지지 않았다. 화면 반대편의 사람들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들의 시선은 무겁게 리를 짓눌렀다. 리는 점점 자신이 사람이라기보다 움직이고, 멈추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어떤 ‘물건’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리는 엄마가 몰래 누군가에게 돈을 건네는 장면을 보았다. 낯선 남자가 그 돈을 가져가며 웃었고, 엄마는 하얀 가루 뭉치를 쥐고 있었다. 리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팔린 이유, 그리고 그 돈이 마약상에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굶주렸던 것은 단지 가난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의 마음속에 자리한 결핍, 절망, 중독이 만든 굶주림이었다. 그날 이후 리는 밥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준 밥 한 숟갈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다시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듯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그 지옥 같은 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경찰, 사회복지사, 구조팀. 갑작스러운 소란 속에서 리는 구출되었다. 그날 이후, 리는 동생들과 함께 정부의 보호 아래 장기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처음으로 굶지 않아도 되는 침대, 문이 잠기지 않은 방, 폭력의 소음 대신 평화로운 침묵이 있는 공간. 그러나 그 ‘안전’ 속에서도 리의 마음은 쉼을 알지 못했다. 어두운 방의 냄새, 카메라 불빛의 섬광,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꿈속까지 따라왔다. 누군가 자신을 안심시키려 손을 잡아도, 리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회복은 아주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
시설에서의 첫날밤, 리는 창밖을 보았다. 창문 너머에는 작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 불빛은 작고 흔들렸지만, 리는 오랜만에 그것을 ‘빛’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이제 조금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리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통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불처럼 타올랐다. 아동 보호소에서 지내던 시절, 그 분노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향했다. 사소한 일에도 폭발했고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후회했다. “그냥 누가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넣어둔 것 같았어요.” 리는 훗날 그렇게 말했다. 아이답게 울 수도, 어른답게 참고 버틸 수도 없는 나이에 리는 분노와 슬픔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였다.

그때 IJM이 리의 회복을 돕기 위해 나섰다. IJM은 리를 정신건강 전문가와 연결해 심리 평가와 치료를 지원했다. 치료사는 리의 분노 속에 숨어 있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꺼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엄마를 미워하지 못할까. 왜 아직도 그 집이 그리울까.”라고 말하며 리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IJM 직원들 앞에서 꺼내놓았다. 12차례의 심리치료가 이어졌고, 어느 날 보호소의 직원들은 조용히 말했다. “리의 눈빛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리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평화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의 범죄에 대한 법의 심판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유죄 협상을 통해 최소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것이 다행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시렸다. 법은 정의를 세웠지만, 리의 마음은 여전히 그 부모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리는 상상도 하지 못한 순간을 맞았다. 부모가 사과의 뜻을 전해온 것이다. 치료사 조세파 하너 박사의 인도로, 리는 부모와의 화해의 자리에 나섰다. 의자 세 개가 놓인 작은 방, 바람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정적 속에서, 부모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하다.” 그 말은 너무 늦게, 너무 짧게 흘러나왔다. 리는 그 말속에서 진심을 찾으려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형식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는 이상하게도 그들의 얼굴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여전히 그들은 ‘엄마’와 ‘아빠’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부모님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내 상황이 아팠어도, 그분들이 나쁜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엄마, 아빠니까요.” 리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날의 만남은 리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를 느리게 풀어주었다. 미움과 사랑, 슬픔과 용서가 한 몸이 되어 뒤섞인 자리에서 리는 처음으로 ‘회복’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그것은 눈물 속에서 피어난 아주 미세한 희망이었고, 그 희망은 여전히 리의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제 23살이 된 리의 이야기는 희망과 회복의 서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현재 솔리드 그라운드 인터내셔널(Solid Ground International, SGI)의 자립 지원 주택에서 지내며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자신과 같은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IJM 후원자들의 지원 덕분에 리는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IJM 직원들이 나를 도와줬어요. 그건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는데도요. 누군가를 격려하고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어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당신의 상처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죠.” 리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진실 같은 울림이 있었다.
리(Lee)는 지금 ‘필리핀 생존자 네트워크(PSN)’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며 인식 개선과 옹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동료 생존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있다. 오늘의 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생존자 리더로 서서 자신의 과거에 갇히지 않고 과거의 경험을 새로운 힘으로 바꾸고 있다.
리는 용기와 강인함, 그리고 정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의 걸음은 조용하지만 단단하여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존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8살이었던 리(Lee)*의 집에는 언제나 폭풍이 몰아쳤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마약에 중독돼 있었다. 저녁이면 술 냄새와 고함이 집을 채웠고, 새벽이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울음이 들려왔다. 리는 늘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익숙해질 수 없는 폭력이 세상의 질서인 줄 알고 자라야 했다.
그런 리에게는 일하지 않는 부모와 다섯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리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막내의 기저귀를 갈았다. “저는 집안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리는 어린 아이었지만 이미 가족들 안에서 ‘엄마’였다.
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리의 부모님의 싸움 소리는 동네 끝까지 퍼졌고,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그 소리를 흉내 냈다. 아이들은 웃으며 “너희 집 어제 또 싸웠다며?”라고 말했고, 리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 부끄러움은 말보다 깊게 새겨졌다. 폭력은 단지 집 안의 일이 아니었다. 이웃의 시선 속에서도, 놀림 속에서도 리를 따라다녔다. 리의 이름은 어느새 ‘그 집 아이’로 불렸고, 아무도 진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를 따라 같은 동네에 사는 이모의 집에 가게 되었다. 눅눅한 공기와 싸늘한 조명이 깔린 그 방 안에서 리는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엄마는 방 한켠에 앉아 있었고, 이모는 리에게 다양한 포즈들을 지시했다. 거절하는 법을 배우기엔 아직 너무 어렸기에 ‘싫다’는 말을 꺼내면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리는 그저 가족들이 시키는 대로, 어른들이 바라보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 일을 마치면 이모는 50페소(약 1,000원)를 내밀었다. 낡고 구겨진 지폐 한 장, 그 돈이면 작은 인형을 하나 살 수 있었다. 인형의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드레스, 리는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만큼은 자신이 평범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리는 그 지폐를 손에 쥐며 늘 혼잣말을 했다. “이건 나쁜 게 아니야. 인형을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어린 리는 세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마음으로 견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의 엄마는 그들의 집에 컴퓨터 한 대를 가져왔다. 낡은 집 한구석에 처음으로 불빛이 들어왔다. 그날부터 리는 더 이상 이모의 집에 가지 않았다. 카메라가 켜지면, 엄마는 리를 불러. “오늘도 촬영을 해야지. 안 하면 밥 절대 못먹어!” 라고 소리치며 말했다. 리는 배가 너무 고팠고 그 말이 진짜일 거라 믿었다. 울면 혼났고 웃으면 괜찮다고 했다. 울음과 웃음의 경계가 흐려진 채 리의 하루는 반복되었고, 거의 매일 매일이 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리의 기억 속에서 그 방은 늘 어둡게 남아 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커튼은 낮에도 젖혀지지 않았다. 화면 반대편의 사람들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들의 시선은 무겁게 리를 짓눌렀다. 리는 점점 자신이 사람이라기보다 움직이고, 멈추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어떤 ‘물건’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리는 엄마가 몰래 누군가에게 돈을 건네는 장면을 보았다. 낯선 남자가 그 돈을 가져가며 웃었고, 엄마는 하얀 가루 뭉치를 쥐고 있었다. 리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팔린 이유, 그리고 그 돈이 마약상에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굶주렸던 것은 단지 가난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의 마음속에 자리한 결핍, 절망, 중독이 만든 굶주림이었다. 그날 이후 리는 밥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준 밥 한 숟갈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다시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듯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그 지옥 같은 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경찰, 사회복지사, 구조팀. 갑작스러운 소란 속에서 리는 구출되었다. 그날 이후, 리는 동생들과 함께 정부의 보호 아래 장기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처음으로 굶지 않아도 되는 침대, 문이 잠기지 않은 방, 폭력의 소음 대신 평화로운 침묵이 있는 공간. 그러나 그 ‘안전’ 속에서도 리의 마음은 쉼을 알지 못했다. 어두운 방의 냄새, 카메라 불빛의 섬광,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꿈속까지 따라왔다. 누군가 자신을 안심시키려 손을 잡아도, 리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회복은 아주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
시설에서의 첫날밤, 리는 창밖을 보았다. 창문 너머에는 작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 불빛은 작고 흔들렸지만, 리는 오랜만에 그것을 ‘빛’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이제 조금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리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통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불처럼 타올랐다. 아동 보호소에서 지내던 시절, 그 분노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향했다. 사소한 일에도 폭발했고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후회했다. “그냥 누가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넣어둔 것 같았어요.” 리는 훗날 그렇게 말했다. 아이답게 울 수도, 어른답게 참고 버틸 수도 없는 나이에 리는 분노와 슬픔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였다.
그때 IJM이 리의 회복을 돕기 위해 나섰다. IJM은 리를 정신건강 전문가와 연결해 심리 평가와 치료를 지원했다. 치료사는 리의 분노 속에 숨어 있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꺼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엄마를 미워하지 못할까. 왜 아직도 그 집이 그리울까.”라고 말하며 리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IJM 직원들 앞에서 꺼내놓았다. 12차례의 심리치료가 이어졌고, 어느 날 보호소의 직원들은 조용히 말했다. “리의 눈빛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리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평화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의 범죄에 대한 법의 심판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유죄 협상을 통해 최소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것이 다행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시렸다. 법은 정의를 세웠지만, 리의 마음은 여전히 그 부모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리는 상상도 하지 못한 순간을 맞았다. 부모가 사과의 뜻을 전해온 것이다. 치료사 조세파 하너 박사의 인도로, 리는 부모와의 화해의 자리에 나섰다. 의자 세 개가 놓인 작은 방, 바람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정적 속에서, 부모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하다.” 그 말은 너무 늦게, 너무 짧게 흘러나왔다. 리는 그 말속에서 진심을 찾으려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형식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는 이상하게도 그들의 얼굴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여전히 그들은 ‘엄마’와 ‘아빠’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부모님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내 상황이 아팠어도, 그분들이 나쁜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엄마, 아빠니까요.” 리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날의 만남은 리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를 느리게 풀어주었다. 미움과 사랑, 슬픔과 용서가 한 몸이 되어 뒤섞인 자리에서 리는 처음으로 ‘회복’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그것은 눈물 속에서 피어난 아주 미세한 희망이었고, 그 희망은 여전히 리의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제 23살이 된 리의 이야기는 희망과 회복의 서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현재 솔리드 그라운드 인터내셔널(Solid Ground International, SGI)의 자립 지원 주택에서 지내며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자신과 같은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IJM 후원자들의 지원 덕분에 리는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IJM 직원들이 나를 도와줬어요. 그건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는데도요. 누군가를 격려하고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어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당신의 상처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죠.” 리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진실 같은 울림이 있었다.
리(Lee)는 지금 ‘필리핀 생존자 네트워크(PSN)’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며 인식 개선과 옹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동료 생존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있다. 오늘의 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생존자 리더로 서서 자신의 과거에 갇히지 않고 과거의 경험을 새로운 힘으로 바꾸고 있다.
리는 용기와 강인함, 그리고 정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의 걸음은 조용하지만 단단하여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존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