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를로뇨는 일곱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웃음과 미소를 사랑하는 그는, 늘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유쾌한 농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곤 했다. 그렇게 밝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그는, 어릴 적부터 ‘형’이라는 이름 안에 담긴 책임감을 자연스레 품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땅을 일구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정성껏 식사를 만들어 가족의 삶을 꾸려가셨다. 하루하루가 땀으로 버무려지던 그 시절, 로를로뇨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고단함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아버지가 굳이 불러 세우지 않아도, 새벽 농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용히 따라 나서곤 했다.
“첫째로서 아버지가 농장에 가실 때면, 아버지가 시키지 않아도 따라가서 돕곤 했습니다.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를로뇨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로를로뇨가 14 살이 되던 해, 낯선 남자가 가족의 집을 찾아왔다. 그날, 아버지는 조심스레 그 남자를 소개하며 말했다.
“이 분이 너를 학교에 보내주신다구나.”
로를로뇨의 마음은 들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큰 도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토록 원하던 배움의 기회였다. 그는 꿈을 꾸듯 고개를 끄덕이며, 두려움보다 기대를 안고 낯선 이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학교 대신 그가 도착한 곳은 광활한 볼타 호수였다. 책상도, 교실도, 선생님도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건 낡은 어선 한 척과, 거친 물살과, 지시만을 내리는 어른들뿐이었다. 그는 학교에 간 것이 아니라, 일터로 팔려 온 것이었다.
속았다는 사실은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현실은 무자비하게 그의 착각을 부수어 놓았다. 첫날, 어선의 엔진이 멈췄을 때 학교에 보내준다고 했던 인신매매범은 그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화를 냈고 이내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그날, 로를로뇨는 학교를 꿈꾸던 소년이 아닌, 볼타 호수의 고요한 물결 아래 외로이 가라앉는 한 아이가 되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제가 학교에 간다고 속았다는 것과, 그곳에서 맞기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많이 상처받았습니다.”
로를로뇨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어린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와 배신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배움의 길이라고 믿었던 여정은 실은 강제 노동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리고 낯선 어른의 주먹과 고함, 매서운 호수의 바람, 해가 뜨고 지는 동안 끝없이 반복되는 고된 노동이 그의 하루를 채워갔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을 데려다줄 거라고 믿었던 아버지를 다시 붙잡기 위해, 로를로뇨는 몰래 가해자의 아내가 두고 간 휴대전화를 찾아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 데리러 와 주세요.”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간절하게 알렸다. 아버지는 약속했다.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다음 날, 로를로뇨가 본 것은 구출이 아닌, 또 다른 절망이었다. 그의 동생, 조를라뇨가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지 않았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로를로뇨는 그때를 떠올리며 말끝을 흐린다. 믿었던 사람에게 다시금 상처받은 소년은, 그 순간 세상 어디에도 자신을 지켜줄 어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두 번째로 전화를 시도했을 때, 그는 붙잡혔다. 인신매매는 그를 더 깊은 외딴 지역으로 옮겼고, 휴대전화조차 쓸 수 없는 그곳에서 로를로뇨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하루 두 끼, 그것도 충분치 않은 식사. 햇빛 아래 길게 이어지는 고된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 매 순간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의 무서운 얼굴을 느끼며 약 2년 동안 그는 호수 위에서 살았다.
“호수 위에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노를 저어도 배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는 떨리는 기억 속에서도 차분히 말했다. 그 말에는 공포와 체념, 그리고 지독한 고독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견뎠다. 작고 여린 몸으로도, 그는 견뎠다. 배신의 고통과 차가운 물결, 비바람을 모두 이겨내며 소년은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2018년, 16 살이 된 로를로뇨는 마침내 동생과 함께 긴 어둠 속에서 벗어나 IJM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로를로뇨는 가나 생존자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누며, 같은 상처를 겪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여러 행사와 모임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구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깊은 열정과 책임감이 엿보인다.
“호수 위에서는 피곤해도 쉴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필요할 때 쉴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로를로뇨의 이 한마디는 자유와 회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고스란히 전한다. 매일 매 순간이 투쟁이었던 그곳과 달리 지금 그는 자신을 돌볼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되었다.
현재 로를로뇨와 그의 동생은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며 목공 기술을 배우고 있다. 자녀들을 인신매매에 가담시킨 혐의로 부모님은 구금된 상태지만 그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부모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분노를 조금씩 치유해가고 있다.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상처와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롭게 꿈도 생겨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거나 축구 선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는 로를로뇨. 자신의 이름 ‘사랑은 좋다(Love is good)’가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믿는다.
로를로뇨의 이야기는 고통과 배신, 폭력의 그늘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을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한 소년의 깊은 내면과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그는 이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사랑과 용기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에도 빛을 전하는 존재로 성장하고 있다.
로를로뇨는 일곱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웃음과 미소를 사랑하는 그는, 늘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유쾌한 농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곤 했다. 그렇게 밝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그는, 어릴 적부터 ‘형’이라는 이름 안에 담긴 책임감을 자연스레 품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땅을 일구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정성껏 식사를 만들어 가족의 삶을 꾸려가셨다. 하루하루가 땀으로 버무려지던 그 시절, 로를로뇨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고단함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아버지가 굳이 불러 세우지 않아도, 새벽 농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용히 따라 나서곤 했다.
“첫째로서 아버지가 농장에 가실 때면, 아버지가 시키지 않아도 따라가서 돕곤 했습니다.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를로뇨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로를로뇨가 14 살이 되던 해, 낯선 남자가 가족의 집을 찾아왔다. 그날, 아버지는 조심스레 그 남자를 소개하며 말했다.
“이 분이 너를 학교에 보내주신다구나.”
로를로뇨의 마음은 들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큰 도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토록 원하던 배움의 기회였다. 그는 꿈을 꾸듯 고개를 끄덕이며, 두려움보다 기대를 안고 낯선 이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학교 대신 그가 도착한 곳은 광활한 볼타 호수였다. 책상도, 교실도, 선생님도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건 낡은 어선 한 척과, 거친 물살과, 지시만을 내리는 어른들뿐이었다. 그는 학교에 간 것이 아니라, 일터로 팔려 온 것이었다.
속았다는 사실은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현실은 무자비하게 그의 착각을 부수어 놓았다. 첫날, 어선의 엔진이 멈췄을 때 학교에 보내준다고 했던 인신매매범은 그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화를 냈고 이내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그날, 로를로뇨는 학교를 꿈꾸던 소년이 아닌, 볼타 호수의 고요한 물결 아래 외로이 가라앉는 한 아이가 되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제가 학교에 간다고 속았다는 것과, 그곳에서 맞기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많이 상처받았습니다.”
로를로뇨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어린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와 배신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배움의 길이라고 믿었던 여정은 실은 강제 노동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리고 낯선 어른의 주먹과 고함, 매서운 호수의 바람, 해가 뜨고 지는 동안 끝없이 반복되는 고된 노동이 그의 하루를 채워갔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을 데려다줄 거라고 믿었던 아버지를 다시 붙잡기 위해, 로를로뇨는 몰래 가해자의 아내가 두고 간 휴대전화를 찾아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 데리러 와 주세요.”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간절하게 알렸다. 아버지는 약속했다.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다음 날, 로를로뇨가 본 것은 구출이 아닌, 또 다른 절망이었다. 그의 동생, 조를라뇨가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지 않았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로를로뇨는 그때를 떠올리며 말끝을 흐린다. 믿었던 사람에게 다시금 상처받은 소년은, 그 순간 세상 어디에도 자신을 지켜줄 어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두 번째로 전화를 시도했을 때, 그는 붙잡혔다. 인신매매는 그를 더 깊은 외딴 지역으로 옮겼고, 휴대전화조차 쓸 수 없는 그곳에서 로를로뇨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하루 두 끼, 그것도 충분치 않은 식사. 햇빛 아래 길게 이어지는 고된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 매 순간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의 무서운 얼굴을 느끼며 약 2년 동안 그는 호수 위에서 살았다.
“호수 위에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노를 저어도 배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는 떨리는 기억 속에서도 차분히 말했다. 그 말에는 공포와 체념, 그리고 지독한 고독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견뎠다. 작고 여린 몸으로도, 그는 견뎠다. 배신의 고통과 차가운 물결, 비바람을 모두 이겨내며 소년은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2018년, 16 살이 된 로를로뇨는 마침내 동생과 함께 긴 어둠 속에서 벗어나 IJM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로를로뇨는 가나 생존자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누며, 같은 상처를 겪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여러 행사와 모임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구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깊은 열정과 책임감이 엿보인다.
“호수 위에서는 피곤해도 쉴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필요할 때 쉴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로를로뇨의 이 한마디는 자유와 회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고스란히 전한다. 매일 매 순간이 투쟁이었던 그곳과 달리 지금 그는 자신을 돌볼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되었다.
현재 로를로뇨와 그의 동생은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며 목공 기술을 배우고 있다. 자녀들을 인신매매에 가담시킨 혐의로 부모님은 구금된 상태지만 그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부모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분노를 조금씩 치유해가고 있다.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상처와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롭게 꿈도 생겨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거나 축구 선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는 로를로뇨. 자신의 이름 ‘사랑은 좋다(Love is good)’가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믿는다.
로를로뇨의 이야기는 고통과 배신, 폭력의 그늘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을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한 소년의 깊은 내면과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그는 이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사랑과 용기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에도 빛을 전하는 존재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