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켐라지는 한때 벽돌 공장에서 강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공장주에게 돈을 빌렸지만, 그 선택은 자유를 빼앗기는 길이 되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끝없는 노동을 강요받았던 켐라지와 그의 가족은 2016년, 지역 당국과 지원 단체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구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그 후 켐라지는 생존자로서의 삶을 넘어, 다른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리더가 되었다. 그는 교육이 빈곤과 착취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거주하는 파치마타 마을, 특히 빌(Bhil) 부족이 사는 빌 바스티(Bhil Basti) 지역에는 학교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학교는 3km 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 길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위험했다. 호수와 모래 언덕을 지나야 했고, 개들의 위협과 교통사고 위험도 높았다. 안전한 대중교통도 없어 아이들은 25분 넘게 걸어야 했고, 결국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켐라지는 이 현실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2023년 9월, 그는 아동 복지위원회와 현지 비영리 단체들과 함께 마을에 학교를 설립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아이들이 학습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임시 학교(브릿지 스쿨)를 시작하려 했다. IJM은 그가 현지 NGO인 가야트리 세바 산스탄(Gayatri Seva Sansthan, 이하 GSS)과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왔고, GSS는 본래 소녀들만을 위한 학교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켐라지의 요청에 따라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식샬라야 프로그램(Shikshalaya program)"으로 확장했다.

이후 12월, 켐라지는 GSS의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마을 아이들의 교육 실태를 조사했다. 예상대로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현실을 확인했다. 부모들은 일일 임금 노동자로서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줄 여력이 없었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정도 많았다. 켐라지는 가정을 방문하며 부모들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2024년 5월 1일, GSS는 파치마타 마을에 학교를 개교했고, 켐라지는 그 개교식에 함께했다. 마을 출신의 교사가 임명되어 8세에서 16세 사이의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힌디어 시와 이야기를 가르쳤다.
한 학생은 “제 이름을 쓰는 법을 배웠어요!”라며 기쁨을 표현했다.
아이들은 매일 저녁 마을의 야외 공간에서 수업을 받고 있으며, 때로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집을 학업 공간으로 내어주기도 한다. 이 학교는 단순한 학습 공간을 넘어, 중도에 교육을 놓친 아이들이 학업을 따라잡고 정규 교육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켐라지는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학교를 방문하며 아이들의 학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배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찹니다. 모든 아이들이 정규 학교에 입학하는 날을 꿈꿉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GSS와 협력해 아이들이 학교에 꾸준히 다닐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교복을 나눠주는 행사도 함께 조직했다.
켐라지의 노력 덕분에 지금 이 마을의 20여 명의 아이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이 정규 학교에 재입학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돕고, 미래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안전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그가 교육을 통해 착취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다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현되고 있다.
“저는 이 지역의 그 누구도 벽돌 공장에서 강제 노동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약속입니다.” - 켐라지
켐라지는 한때 벽돌 공장에서 강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공장주에게 돈을 빌렸지만, 그 선택은 자유를 빼앗기는 길이 되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끝없는 노동을 강요받았던 켐라지와 그의 가족은 2016년, 지역 당국과 지원 단체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구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그 후 켐라지는 생존자로서의 삶을 넘어, 다른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리더가 되었다. 그는 교육이 빈곤과 착취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거주하는 파치마타 마을, 특히 빌(Bhil) 부족이 사는 빌 바스티(Bhil Basti) 지역에는 학교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학교는 3km 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 길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위험했다. 호수와 모래 언덕을 지나야 했고, 개들의 위협과 교통사고 위험도 높았다. 안전한 대중교통도 없어 아이들은 25분 넘게 걸어야 했고, 결국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켐라지는 이 현실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2023년 9월, 그는 아동 복지위원회와 현지 비영리 단체들과 함께 마을에 학교를 설립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아이들이 학습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임시 학교(브릿지 스쿨)를 시작하려 했다. IJM은 그가 현지 NGO인 가야트리 세바 산스탄(Gayatri Seva Sansthan, 이하 GSS)과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왔고, GSS는 본래 소녀들만을 위한 학교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켐라지의 요청에 따라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식샬라야 프로그램(Shikshalaya program)"으로 확장했다.
이후 12월, 켐라지는 GSS의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마을 아이들의 교육 실태를 조사했다. 예상대로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현실을 확인했다. 부모들은 일일 임금 노동자로서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줄 여력이 없었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정도 많았다. 켐라지는 가정을 방문하며 부모들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2024년 5월 1일, GSS는 파치마타 마을에 학교를 개교했고, 켐라지는 그 개교식에 함께했다. 마을 출신의 교사가 임명되어 8세에서 16세 사이의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힌디어 시와 이야기를 가르쳤다.
한 학생은 “제 이름을 쓰는 법을 배웠어요!”라며 기쁨을 표현했다.
아이들은 매일 저녁 마을의 야외 공간에서 수업을 받고 있으며, 때로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집을 학업 공간으로 내어주기도 한다. 이 학교는 단순한 학습 공간을 넘어, 중도에 교육을 놓친 아이들이 학업을 따라잡고 정규 교육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켐라지는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학교를 방문하며 아이들의 학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배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찹니다. 모든 아이들이 정규 학교에 입학하는 날을 꿈꿉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GSS와 협력해 아이들이 학교에 꾸준히 다닐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교복을 나눠주는 행사도 함께 조직했다.
켐라지의 노력 덕분에 지금 이 마을의 20여 명의 아이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이 정규 학교에 재입학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돕고, 미래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안전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그가 교육을 통해 착취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다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현되고 있다.
“저는 이 지역의 그 누구도 벽돌 공장에서 강제 노동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약속입니다.” - 켐라지